금강산의 명성이 내외에 널리 알려진것은 7세기를 전후로 한 시대부터였다. 중세로부터 현대초기에 이르는 오랜 력사적기간에 력대 봉건관리들과 문인들, 중들이 금강산을 찾아 풍경을 즐겼으며 그 황홀감과 신비경을 자랑하는 많은 시가작품들과 그림들, 기행문들을 만들었다. 이시기 금강산은 중국과 일본, 일부 유럽지역에도 널리 알려져있었다.
어떤 한 외국인은 《원컨데 고려국에서 태여나서 금강산을 한번이라도 보았으면...》하고 자기의 절절한 소원을 시에 담았으며 19세기말 영국의 세계적인 려행가 이자벨리 이쇼프는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세계의 어느 명산의 아름다움도 초월하고있다》고 려행기에서 찬양하였다. 금강산을 탐승한 일본의 한 화가는 《금강산의 절승은 백개의 묘기산, 천개의 야바계곡을 합친것보다 낫다》고 하였으며 1930년대초에 한 외국인은 《미국의 국립공원인 요세미트 그랜드캬니온이나 알프스, 곤륜산줄기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과는 산수를 론할수 없다고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오늘은 조선의 금강산에 오르지 못한 사람과는 산수를 론할수 없다고 하는 새 시대에 들어섰다》고 말하였다. 이처럼 금강산을 오래전부터 내외에 널리 알려져있었으나 그것은 근로인민대중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였다. 금강산의 명성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을 찾아주시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빛내여주시는 주체시대를 맞이하면서부터 주체조선의 위용과 더불어 세계적인 명산, 인민의 문화휴식터로 내외의 광범한 대중속에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주체조선의 금강산을 찾는 관광객들은 해마다 수천수만명에 이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