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9-09-09    조회 : 812
 
금강산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동포애를 길이 전해갈것입니다(1)

8월 29일은 총련 금강산가극단결성 42돐이 되는 날입니다.

세월의 흐름속에 우리 가극단의 세대도 여러차례 바뀌였습니다.

그러나 변할수도 달라질수도 없는것이 있으니 그것은 천하절승 금강산의 이름과 더불어 빛나는 우리 가극단의 사명입니다.

추억의 돛을 달고 우리 가극단이 무어지던 첫기슭으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민족의 명산인 금강산을 남녘겨레들에게 보여주고싶으시여 그토록 마음쓰시던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동포애의 세계가 뜨겁게 흘러들어 붓을 들었습니다.

감회도 새로운 그날은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62돐을 하루 앞둔 1974년 4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재일동포들의 다함없는 감사와 축원의 마음을 안고 평양을 찾아온 우리 재일조선중앙예술단(당시)의 공연을 몸소 보아주시였습니다.

초상화에서 뵈오며 운명의 태양으로 우러르던 어버이수령님을 직접 몸가까이 모시고 공연을 하는 행운을 받아안았으니 어떻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꿈만 같아 눈물만 앞서군 합니다.

제가 그 무상의 영광을 가요 《끝없는 이 행복 노래부르네》에 담아 불러드렸을 때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잘 하오! 아주 훌륭하게 부릅니다!》라고 하시며 제일 먼저 박수도 쳐주시고 몸소 재청까지 해주시였습니다.

수령님의 하늘같은 축복을 받아안으며 노래 《조국의 사랑은 따사로워라》를 부를수록 저도몰래 눈굽이 젖어들고 한없는 고마움과 감사의 정이 물결쳐왔습니다.

바람도 거치른 이역땅에서 갖은 민족적천대와 멸시를 받아온 저희들이였습니다.

수령님께서 총련을 무어주시고 우리들을 존엄높은 공화국의 해외공민으로 내세워주시여 마침내 인생의 새봄을 맞이하고 마음껏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를수 있었습니다.

너무도 크나큰 격정이 북받쳐와 저는 노래를 미처 다 부르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떨리는듯 한 관현악선률이 저의 심정을 대변하고있었습니다.

이러한 저의 모습을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말없이 눈가로 손수건을 가져가시는것이였습니다.

진정 수령님의 그 모습에 가까이에 있는 자식보다 멀리 떨어져있는 자식을 더 위하시는 한없이 자애로운 어버이의 정이 비껴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연종목이 바뀔 때마다 크게 박수를 쳐주시며 크나큰 행복을 안겨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심중에서 일본에 살고있는 우리 동포들만이 아닌 온 겨레를 위한 원대한 구상이 무르익어가고있는줄 우리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날 저희들과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며 공연성과를 축하해주시던 수령님께서는 총련예술인들이 조국에 처음 왔는데 공연만 하지 말고 조국의 예술을 배워가는것이 좋겠다고,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를 배워가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는것이였습니다.

후에 들은데 의하면 그해 3월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총련예술인들이 4월의 봄명절을 맞으며 조국에 오게 된다는것을 아시고 평양대극장에서 공연하는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를 보아주시며 이국땅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는 동포들에게 《금강산의 노래》를 안겨주자고, 예술단동무들이 조국에 와서 머무르는동안 가극을 배워가게 하자고 절절히 교시하시였다고 합니다.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본땅에 휘몰아칠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의 열풍을 그려보며 격정을 금치 못해하는 일군들에게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습니다.

《총련에서 가극을 배워가지고 가서 일본에 다녀가는 남조선인민들에게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남조선에서 금강산은 지척에 있습니다. 그러나 남조선인민들은 안팎의 분렬주의자들의 범죄적책동으로 말미암아 금강산에 와보지 못합니다.

오스트랄리아기자 버체트는 <금강산의 노래>를 보다가 조국에 두고 온 딸을 생각하여 정신을 잃었다고 합니다.

금강산의 노래는 해외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는 동포들과 나라의 분렬로 하여 고통받고있는 남조선인민들에게 큰 감명을 줄수 있습니다.

나는 이 가극이 조국을 떠나 해외에서 고생하는 60만재일동포들에게 좋은 선물로 되리라는것을 굳게 믿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금강산가극단을 무어주는것입니다.》

이 얼마나 겨레의 심금을 울려주는 숭고한 동포애의 세계입니까.

천태만상의 경관을 이루었다는 금강산은 누구나 한번 보면 원이 없겠다고 하는 조선의 절승입니다.

그러나 봉건의 질곡과 학대속에서, 수십년간의 일제의 식민지통치하에서 몸부림쳐야 했던 수난의 세월 우리 인민의 꿈은 이루어질수 없었습니다.

언제인가 금강산을 인민의 명승지로 더욱 훌륭하게 꾸려주시기 위해 몸소 현지를 찾으시였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세계에 아름답기로 이름높은 조국의 명산 금강산을 우리의 선조들은 한번 와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우리 인민들이 일제의 식민지통치하에서 망국노의 생활을 하면서 끼니조차 제대로 에울수 없었던 처지에서 금강산을 구경할 생각이나 할수 있었겠는가고 가슴아픈 심정으로 교시하시였다고 합니다.

우리 재일동포들이 조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면 누구나 선참으로 물어보는것은 천하절승 금강산에 가보았는가 하는것입니다.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는 일제식민지통치시기 금강산에 선녀들이 내린다하지만 눈물고인 나의 눈엔 보이지않네라는 피눈물의 노래를 부르며 생리별까지 강요당했던 황석민일가가 로동당의 품속에서 인민의 명산으로 전변된 금강산의 새력사를 노래하면서 20여년만에 다시 만나는 극적인 이야기를 담고있습니다.

금강산을 조선의 기상으로 간직하고 꿈속에서도 가보기를 소원하는 우리 동포들이 인민의 락원으로 우뚝 솟은 금강산을 통채로 떠옮긴것 같이 황홀하고 신비한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를 보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더우기 금강산을 지척에 두고도 가보지 못하는 남녘의 겨레들, 통일되기전에라도 금강산만은 꼭 보고싶다고 하는 그들이 이 가극을 보면 그 기쁨과 감격은 이루 헤아릴수 없이 클것입니다.

하루빨리 가극을 배워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동포애가 어린 선물을 재일동포들과 남녘겨레들에게 안겨주자!

예술단성원들의 심장은 이 하나의 지향으로 높뛰였습니다.

하지만 어느모로 보나 미흡한 저희들이 세계가극예술의 최고 경지에 오른 《피바다》식 혁명가극을 형상하는것이 쉬운일은 아니였습니다.

대사와 노래, 무용이 동반되고 인물들의 내면심리를 깊이있게 펼쳐보여야 하는 가극의 세계에 심취되고 매혹될수록 너무도 부족한 자신들의 예술적준비정도와 기량을 두고 가슴태우며 잠못 이룬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혁명가극이라고 하여 신비하게 생각할것이 없다고, 마음먹고 해보느라면 담도 커지고 기량도 높아진다고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시며 가극전습에 필요한 은정어린 조치들을 다 취해주시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동포애, 우리 총련예술인들에 대한 하늘같은 믿음과 사랑은 기적을 낳아 마침내 한달만에 우리는 전습받은 가극을 무대에 올릴수 있었습니다.

1974년 6월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시는 길로 평양대극장에 나오시여 우리들의 공연을 보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못내 만족해하시며 140여명이나 되는 전체 성원들에게 일일이 축배잔까지 찧어주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일본으로 돌아가면 금강산가극단을 꾸리고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를 공연하여 총련과 일본에 오는 남조선동포들과 일본인민들에게 보여줄데 대하여 거듭 당부하시였으며 앞으로 2년에 한번씩 조국에 와서 새 작품들을 배워가도록 하라고 뜨거운 정을 담아 교시하시였습니다.

단란한 가정적분위기속에서 시간은 퍼그나 흘러 수령님께서 떠나실 때가 되자 저희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그이의 승용차를 겹겹히 에워싸고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였습니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아까는 2년에 한번씩 오기로 했는데 매해 오기로 하자고, 해마다 와서 만나기로 하자고 하시며 목메여 흐느끼는 우리들을 달래시는것이였습니다.

우리 수령님은 이런 분이시였습니다.

한없이 인자하시고 동포애의 정으로 뜨거우신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우러르고 또 우러르며 우리 총련예술단의 전체 성원들은 겨레에게 민족의 넋을 심어주고 조국통일운동에로 불러일으켜야 할 사명감을 깊이 새겨안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태양의 품속에서 금강산의 선남선녀가 되여 돌아온 저희들은 그해 8월 29일 재일조선중앙예술단을 금강산가극단으로 명명하는 모임을 성대히 진행하였으며 공화국창건 26돐을 맞으며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의 막을 올렸습니다.

공연을 시작하여 불과 3일동안에만도 총련뿐아니라 남조선동포들과 일본인민들, 일본에 체류하고있는 외국인들 등 1만여명이 가극을 관람하였습니다.

《도꾜한복판에 조선의 금강산이 솟아올랐다.》

《매혹적인 공연,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고 금강산에 올라 통일봄맞이하자.》

《이 가극을 서울이나 부산에서 공연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날은 반드시 올것이다.》

온 일본땅이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열풍으로 끓어번지는 속에 조선사람이라면 누구나 민족의 넋과 애국의 마음을 더 깊이 간직하며 통일의지로 온 넋을 불태우던 그때의 광경을 수십년세월이 지난 오늘도 잊을수 없습니다.

천하절승 금강산의 1만2천봉우리에 활짝 피여난 목란꽃처럼 애국충정의 짙은 향기를 풍기며 저희들은 일본땅 가는곳마다에서 동포사회의 열렬한 축복속에 공연무대를 펼쳐놓았습니다.

이후에는 가극의 주요장면들과 조국방문의 나날에 새로 배운 춤과 노래들을 형상하여 중국과 로씨야, 도이췰란드, 태평양건너 미국땅에까지 건너가 공연무대를 펼쳤습니다.

공연무대가 펼쳐지는 곳마다에서 동포사회가 환호하고 세상 사람 누구나 박수갈채를 터칠 때마다 기쁨과 환희로 일어번지는 저희들의 가슴에 미여지게 새겨지군 한것은 총련예술단만이라도 남조선에 건너가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음성이였습니다.

한피줄을 나눈 그리운 혈육들이 살고있는 땅, 꿈결에도 그려보는 남녘의 겨레들을 찾아 금강의 향취, 민족의 향취가 넘쳐 흐르는 노래를 싣고 춤을 싣고 출항의 배고동소리 높이 울릴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은마냥 부풀어올랐고 통일의지로 심장은 뜨겁게 불타올랐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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