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4-01-29    조회 : 270
 
금강산의 산성


금강산에는 북으로부터 해안을 따라 침입해오는 외적과 바다로부터 불의에 상륙하여 쳐들어오는 왜적을 막기 위하여 쌓은 성들이 적지 않다.

여러 성들가운데는 고구려나 신라때 쌓은것도 있고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축조된것도 있다.

앞선시기에 쌓은것들은 후시기에 대부분 거듭되는 개축 및 증축공사를 거치였다.

성들은 방어조건과 교통조건이 비교적 유리한 지점들에 축조되였다.

대체로 산봉우리나 나지막한 언덕 또는 가파로운 골짜기사이에 네모형, 둥근형, 일직선형, 산줄기를 따라 바다가에 뻗은 모양 등 다양한 평면구성으로 쌓아졌다.

성벽은 주변의 화강석이나 편마암, 사암 등을 자연상태 그대로 올려쌓은것도 있으나 대부분 장방형으로 다듬어 통이음줄이 없이 벽돌쌓듯이 정교하게 쌓았다. 그리고 안쪽으로는 흙을 덧쌓아 보강하기도 하였다.

성벽들은 경사가 약간 있으나 거의 수직에 가깝고 지형이 가파로운데는 성벽을 따로 쌓지 않고 벼랑을 그대로 리용하였다.

성문은 제일 낮은곳에 하나만 낸 경우도 있고 동서남북 네곳에 낸곳도 있다.

성의 둘레는 일반적으로 400~800m이며 성벽높이는 낮은것은 2~3m, 높은것은 4~5m, 지형이 낮은데는 10m정도 되는것도 있다.

성의 위치와 평면형태, 성벽재료와 그 축조방법 등으로 보아 비록 성자체는 크지 않으나 견고하면서도 방어에 유리하게 성을 쌓기 위하여 우리 인민이 얼마나 큰 관심과 많은 로력을 들였는가 하는것을 알수 있다.

금강산지구의 산성들에는 다른 큰 산성들이 구비하고있는 물도랑(해자)이나 포루, 장대와 같은 성벽시설은 거의 없다. 이것은 우리 나라 동해안의 여러 산봉우리들에 축조된 산성들과 비슷하다.

성의 규모가 작고 여러가지 성벽시설이 없는것으로 보아 이 지구의 산성들은 많은 병력이나 인원을 수용할수 없고 장기간 롱성방어도 할수 없었다고 인정된다.

그러므로 이 산성들은 큰 규모의 전투를 목적으로 쌓은 성이 라기보다는 비교적 적은 력량의 적과 싸우기 위한 거점 또는 방어시설로 축조되였을것이다.

여러 성들가운데서 주목되는것은 온정리옛성과 망군성(금강성)이다.

고구려때에 쌓은 성으로 전하는 온정리옛성은 온정리에서 고성구읍에 이르는 큰 길 왼쪽의 《성안골》에 위치하고있다.

성은 높지 않은 야산에 자리잡고 주변의 산릉선을 따라 돌려쌓여있다.

특히 이 성은 지형을 묘하게 리용하였는데 밖으로부터 들어가면 처음에는 봉우리뒤에 성이 가리워 보이지 않다가 다음에 성벽이 갑자기 나타나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봉우리와 성벽사이에서 단번에 소멸할수 있게 되여있다.

성벽의 둘레는 530m이며 높이는 3~4m이다.

성벽은 30~40cm정도의 크기로 다듬은 돌을 통이음줄없이 쌓았다.

이러한 돌쌓기수법은 평양성이나 다른 고구려산성 성벽에서 보는바와 같이 고구려성들의 특징적인 축성방법이였다.

그후 이 솜씨는 신라, 고려에 의하여 계승되였다. 고구려의 축성방법은 현리옛성을 비롯한 다른 성들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한편 망군성은 내금강 송라골을 거쳐 망군대로 가는 길 오른쪽 봉우리에 있는 돌성인데 약 260m구간에 반달모양으로 쌓아져있다.

성벽높이는 약 3m, 너비는 2m정도이다. 막돌로 쌓은 이 성은 내강리일대에 침입해오는 왜적을 쳐물리치기 위하여 쌓은것으로 전해온다.

성우에는 아직도 기여오르는 적들에게 돌벼락을 들씌우기 위해 무져놓은 돌무지들이 남아있어 옛 싸움모습을 전해주는듯 하다.

좌우켠에 사람이 도저히 붙지 못하는 깎아지른듯한 절벽우에 어떻게 그 많은 돌을 날라다 차곡차곡 쌓았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이다.

온정리 옛성, 망군성을 비롯한 금강산일대의 옛성터들은 외래침략자를 반대하여 조국방위에 일떠선 이 지대 인민들의 애국심과 투쟁사실을 생동하게 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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