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7-10-09    조회 : 91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선원호를 위한 금강산인민들의 투쟁

조국해방전쟁시기 금강산지구인민들은 항일무장투쟁시기 유격근거지인민들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두리에 뭉쳐 항일유격대를 도와 근거지를 지켜싸운 고귀한 투쟁경험을 본받아 사랑하는 조국땅과 우리 나라의 자랑인 금강산을 지켜내기 위하여 인민군대와 함께 헌신적으로 투쟁하였다.

금강산지구인민들은 조국해방전쟁이 개시된 첫날부터 《모든것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전투적호소를 높이 받들고 전선원호사업에 한결같이 떨쳐나섰으며 전선이 이 지구에 기본적으로 고착되여 진지방어전이 진행되던 시기에는 전선원호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리였다.

금강산지구인민들은 특히 1951년 9월 23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화선천리길의 포연탄우속을 헤치시고 치렬한 격전장인 1211고지계선까지 몸소 나오시여 전선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제시하신 과업을 받들고 전선원호투쟁에서 무비의 대중적영웅주의를 발휘하였다.

금강산지구인민들의 전선원호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전선수송을 보장하기 위한 투쟁이였다. 전선이 금강산지구에 고착되고 적들이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 이 일대에 대한 포격과 폭격을 악랄하게 감행하는 조건에서 고지에서 싸우는 인민군용사들에게 포탄, 탄약, 식량 등의 군수물자수송을 보장하는것은 실로 전투승리를 좌우하는 관건적문제의 하나로 나섰다.

금강산지구인민들은 전선수송대, 금강교사수대, 포탄수송대 등을 뭇고 전선수송을 보장하기 위하여 희생적으로 싸웠다.

금강산지구인민들은 무엇보다먼저 전선수송로를 개척하고 지켜냄으로써 전선수송을 제때에 보장해나갔다.

금강인민들은 당조직의 지도밑에 전선동부에로의 수송로를 요충지인 금강읍(당시 회양군 내금강면 말휘리)의 금강교를 지켜내기 위하여 1951년에 무장자위대 20여명과 남녀농민 10여명으로 금강교사수대를 조직하고 다리주변에 대피호를 파고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다리가 파괴되면 즉시로 낮과 밤이 따로 없이 돌격전투를 벌려 하루에 두번이고 세번이고 복구해놓음으로써 군수물자가 제때에 수송되도록 보장하였다.

1951년 12월 어느날 적기의 야수적폭격으로 금강교의 한쪽 기둥이 무너져 전선으로 달리던 수송차들이 멈춰서게 되였을 때에도 금강교사수대원들은 공개당세포총회를 열고 긴급수송을 무조건 보장할것을 결의하여나섰으며 간첩, 파괴분자들의 책동을 분쇄하면서 금강교를 끝까지 지켜냈다.

이러한 위훈이 깃든것으로 하여 금강교는 《영웅의 다리》로 불리웠다.

금강산지구인민들은 월비산과 351고지, 까치봉 계선에서 싸우는 인민군용사들에게 군수물자를 원만히 수송하기 위하여 온정령차길과 산간우회도로를 새롭게 개척하였다.

1951년 11월 고성군과 금강군 인민들은 인민군공병들과 함께 적들의 맹폭격과 추위를 이겨내면서 온정령차길공사에 달라붙어 바위와 절벽을 까내면서 106개 굽이를 에둘러 륙화암으로부터 해발 857m의 온정령까지의 차길을 닦았다. 이것은 일제가 해방전에 10년을 계획하고 하려다가 하지 못한것이였다. 그러던것을 단 두달동안에 구배가 심한 구비마다에 높은 옹벽을 쌓아가면서 60여리 차길을 닦은것은 원쑤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과 숭고한 애국심을 심장에 지닌 우리 인민만이 창조할수 있는 하나의 기적이였다.

우리 인민의 애국주의와 대중적영웅주의가 깃들어있는 온정령은 그후 《영웅의 고개》로 불리우게 되였다.

금강산지구인민들은 또한 포연탄우속을 뚫고 직접 포탄과 탄약, 식량을 불타는 고지에 운반함으로써 전선수송을 성과적으로 보장하였다.

월비산과 351고지의 뒤쪽에 잇닿아있어 전선이나 다름없었던 남강마을의 인민들은 언제나 고지에서 싸우는 인민군대와 함께 남녀로소 할것없이 모두 떨쳐나서 고지에로 포탄과 탄약을 운반하였다. 그들은 1951년 여름 한달동안이나 계속되는 장마로 남강물이 불어나 강을 건늘수 없게 되였을 때 자기 집의 뒤주널, 선반널과 문짝, 궤짝, 지어 토방널까지 모아 하루밤사이에 40~50명이 탈수 있는 배 1척을 뭇고 그 다음날에 또 2척을 무어 포탄을 싸우는 고지의 용사들에게 날라다주었다.

삼일포인민들은 적기의 폭격으로 끊어진 후천(북강)교에 바줄을 늘이고 널을 깔아 허궁다리를 놓고 그우로 포탄과 식량을 운반하였으며 적들의 폭격을 만나 포탄이 위험에 처하면 서슴없이 포탄상자를 안고 물속에 뛰여들어 포탄을 구해냈다.

속사리를 비롯한 금강군의 인민들은 하루에도 3만~4만발의 포탄과 폭탄을 퍼부으면서 1211고지와 후방과의 련계를 끊어보려고 발악하는 원쑤놈들의 책동을 물리치고 직동령을 밤낮없이 넘나들며 포탄과 식량을 운반하였다.

소년들도 소년전선원호대를 뭇고 아버지, 어머니들과 함께 포탄과 탄약을 고지에 날랐다. 하루밤사이에 300명의 소년들이 60여리길을 걸어 300발의 박격포탄을 고지에 운반한 날도 있었다. 이들가운데는 포탄상자에 끈을 메여 고지에까지 끌고올라간 8살난 나어린 소년도 있었고 포진지에까지 찾아가 아버지를 학살한 원쑤놈들에게 복수의 포탄을 퍼부어달라고 하면서 포사수에게 포탄을 넘겨준 소년도 있었다.

금강산지구인민들의 전선원호는 전선과 후방을 하나의 혈맥으로 잇고 전선에 군수물자를 보급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으며 월비산과 351고지, 1211고지를 비롯한 이 계선의 고지들에서 미제침략자들과 그 앞잡이들을 섬멸소탕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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