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7-09-07    조회 : 16
 
정양사를 다시 짓다

정양사는 사찰이 자리잡은 지형지세로 보면 응당 동쪽으로 향해야 하는데 돌부처(약사여래)는 남쪽으로 향해있고 그에 따라 사찰전체가 남향으로 앉아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리유가 있다.  정양사는 7세기초중엽에 동쪽을 향하여 세운 사찰이였다.

그뒤 사찰은 없어지고 돌부처하나만이 동쪽으로 향하여 앉아있었다. 세월이 오래되여 돌부처주변에는 잡초와 관목이 무성해졌고 부처우로는 담장이풀과 머루, 다래 넝쿨이 가득 씌워졌다. 그런데 밤이면 이따금 신비스러운 빛을 내뿜는것이였다.

10세기초에 한 늙은 스님이 그 근방에 와서 초막을 짓고 홀로 살았는데 어느날 밤 돌부처가 꿈에 나타나 늙은 스님에게 말하였다.

《래일 임금이 오겠는데 그는 남쪽 언덕을 넘어올것이다. 나를 움직여 남쪽을 향하게 하여 마중하는 모습으로 되게 하라.》

꿈에서 깨여난 스님은 참 이상한 꿈도 다 있다고 생각하면서 돌부처의 말대로 그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아니나다를가 이튿날 고려태조 왕건이 금강산에 와서 앞산 고개를 넘었다. 그러면서 맹세하기를 《법기보살이 진짜 모습을 나타내야만 내가 산속으로 들어가겠노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정말 법기보살이 보라빛 반짝이는 금빛의 큰 사람으로 하늘에 현신하였고 그가 뿌리는 광명으로 온 천지가 환해졌다.

고려태조가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법기보살의 발밑에 엎드려 인사를 하였다. 이때부터 정양사 남쪽고개를 절고개(배점 또는 배재령)라고 불렀다.

고려태조가 암자에 이르자 늙은 스님은 꿈에 본 사실을 아뢰였다. 이상하게 여긴 태조는 돌부처있는곳을 《방광대》라고 이름짓고 정양사건물을 재건하고 법기보살의 금상을 만들어 반야전에 앉히였으며 약사여래우에는 6각전을 지어 보호하도록 하였다. 이때부터 정양사는 정남쪽을 향해 앉은 사찰이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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