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8-09-11    조회 : 34
 
종을 타고 온 53부처

유점사에는 인디아땅에서 온 53개의 부처를 두기 위하여 이 사찰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석가모니(불교의 창시자)가 죽은 다음 그의 제자인 문수(보살)는 여러 제자들과 함께 불교교리를 설교하고 전파하였다. 어느날 그는 부처의 모습을 한번 보기만이라도 하였으면 하는 인다아사람들에게 《너희들이 정말 부처님을 믿고 받든다면 그 형상을 부어 만들고 공양을 드리는것이 제일 좋을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집집마다 불상을 만들었는데 어떤것은 크기가 한자만 하였고 어떤것은 몇치밖에 안되였다.

보살은 불타(석가모니를 말함)의 가르침대로 불법을 세상에 널리 전파할 목적으로 돌로 배를 만든 다음 큰 종과 그중 온전한  53개의 불상을 실어 바다에 띄워보내면서 《53불이 인연 깊은 나라에 가게 되면 나도 뒤따라 가서 불법을 설교하리라.》라고 하였다.

동쪽으로 흘러가던 돌배가 맨 처음 도착한 곳은 월지국이였는데 그 나라 국왕 혁치가 사찰을 짓고 안치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불이 나서 사찰이 다 타버렸다. 왕이 다시 사찰을 지으려고 하니 그날 밤에 부처가 꿈에 나타나 《나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겠으니 왕은 만류하지 말라.》고 하였다. 국왕은 53불과 큰 종을 돌배에 실어 바다에 띄우면서 《좋은 인연 있는 나라에 갈것이니 그때 나는 권속 수천명을 데리고 가서 불법을 지키는 착한 신이 되여 늘 부처를 옹호하리라.》고 하였다.

돌배는 여러 나라를 두루 떠다니다가 월지국을 떠난지 953년만에 금강산 동쪽 안창현의 포구에 도착하였다.

그때 앞바다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종소리를 듣고 안창현사람들이 바다가로 나가보니 53불과 큰 종이 실려있는 돌배 한척이 있었다. 안창현사람들은 사공 2명을 선출하여 돌배를 바줄로 바위에 붙들어 매였는데 갑자기 사나운 파도가 일면서 배가 뒤집어지고 53불은 종을 타고 겨우 뭍에 오르게 되였다.

지금 영랑호의 앞바다에 있는 《배바위》는 53불이 타고 온 돌배이고 《사공바위》는 두 사공이 불교의 벌을 받아 화석이 된것이며 《현종암》은 당시 종을 걸었던 곳이고 현종암에 난 바줄자리는 돌배를 붙들어 매였던 흔적이라고 한다. 당시 고을원이던 로춘이 그 소식을 듣고 관속들을 데리고 뛰여가보니 부처들이 머물렀던 자리는 뚜렷한데 어데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가지들과 풀들이 모두 금강산쪽을 향하고 있었다.

로춘이 그 방향으로 30리쯤 가니 풀밭에 종을 내리우고 쉰자리가 있었다. 이 자리를 《계방》(쉴방)이라고 부르는데 길가에 있는 돌에 종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로춘이 다시 1 000보 더  가니 문수보살이 스님차림을 하고 서서 부처들이 간 곳을 대주었다. 또 1 000여보를 가니 녀스님으로 변신한 문수보살이 길을 가르켜주었고 좀 더 가느라니 흰 개와 노루가 차례로 나타나 일행을 인도하였다. 그때 부처들을 따라가면서 너무 목이 말라 파서 마셨던 샘물이 지금의 《로춘우물》이고 노루가 나타났던 곳이 《장항》(노루목)이다. 사람들이 험한 산길을 가느라고 피곤하여 잠간 둘러앉아 쉬고있는데 갑자기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종소리를 듣던 곳을 《환희령(점)》이라고 한다.)

종소리를 따라가느라니 소나무,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한가운데 큰 못이 하나 있고 그 북쪽에 큰 느릅나무 한대가 서있었다. 그 나무에다 종을 걸어두고 부처들은 못가에 줄지어 서있었는데 이상한 향기가 자욱하고 상서로운 구름이 떠돌았다.

로춘과 관속들은 너무도 기뻐서 부처들을 바라보며 끝없이 머리를 조아렸다. 로춘은 그 길로 돌아가서 국왕에게 아뢰였다.

왕도 신기하게 여기면서 직접 그곳으로 가서 스스로 불교신자가 되였으며 그 땅에 사찰을 지어 부처들을 안치하게 하였다. 《유점사》라는 사찰이름은 느릅나무가지에 종을 걸어두었다고 한데서 유래된것이다.(《유》자는 《느릅나무 유》자이다.)

후날 한 스님이 53불이 오래동안 향불에 구슬려서 거멓게 된것을 아쉬워하며 재물을 끓여 부처들을 씻었더니 갑자기 우뢰가 울고 폭우가 쏟아지면서 오색구름이 충만된 가운데 53불은 모두 들보우에 날아올라가 줄지어섰다. 그중 세개의 부처는 공중높이 날아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수없었다. 스님은 너무도 얼이 나가서 갑자기 정신병자가 되더니 죽고 말았다.

그후 연충이라는 스님이 모자라는 부처들을 보충하려고 새로 부처 셋을 주조하였는데 그전부터 있던 부처들이 모두 배척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처들은 밤중에 꿈에 나타나 다른 불상을 우리들사이에 두지 말라고 일렀다.

후에 잃어진 세 부처의 행처를 알아냈다. 둘은 구연동(유점사뒤 골안)의 만길이나 되는 절벽우에 올라가 있었는데 사람이 올라갈만한 곳에 있던 부처는 본자리에 갖다두었으나 올라가지 못할 곳에 있던 부처는 그냥 두는수밖에 없었다. 부처 하나는 수정사뒤 절벽우에 있었는데 스님들이 사다리 몇개를 이어 가지고 올라가서 내려다가 그 사찰에 두었다가 24년이 지난 다음 다시 옛 자리에 가져다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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