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8-11-08    조회 : 46
 
사명당이 왜땅에서 적의 괴수를 굴복시키다

금강산의 유명한 력사인물들가운데는 임진조국전쟁시기 의병장이였으며 뛰여난 외교활동가였던 사명당도 있다.

사명당과 관련된 일화들 가운데는 임진조국전쟁직후에 있었던 이러한 이야기도 전해지고있다.

침략전쟁에서 된 타격을 받고 쫓겨난 왜적들은 평화조약을 맺자고 하면서 여러차례 사신을 보내여왔다. 그들은 겉으로는 저들의 잘못을 인정하는체 하면서도 속으로는 조선에 대한 침략야망을 버리지 않고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조정에서는 적의 동정도 탐지하고 승리자의 위세도 크게 떨쳐 왜적의 항복을 받아올만한 외교, 군사 두 방면에 다 유능한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려고 하였다.

1604년에 조선봉건왕조에서는 오래동안 론의하던 끝에 사명당을 보내기로 하였다. 금강산에 있던 그는 왕의 령을 받고 즉시 길을 떠나 그 나라에 도착하였다.

그 나라에서는 유명한 스님인 사명당이 사신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속으로 켕기였으나 갖은 방책을 다하여 그를 놀래움으로써 저들의 요구를 실현해보려고 획책하였다. 놈들은 먼저 조선사신이 오는 길목에 360칸짜리 긴 병풍을 세워두고 거기에 한시를 가득 써놓았다. 그리고 왕궁의 대문안에는 50자깊이의 함정을 파고 그 우에 유리를 깔아놓았다.

사명당은 말을 타고 유유히 오다가 병풍의 글을 한번 쭉 흝어보았다. 그리고는 대문앞에 이르러 더 들어가지 않고 품안에서 념주구슬을 꺼내더니 문칸에 던졌다. 《쟁강》하는 유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는 접대하는 관리를 불러 큰 소리로 호령하였다.

《내 필경 네놈들이 이런 장난을 하리라는것을 미리 알았노라. 빨리 함정을 메꿀지어다.》

왜왕은 그의 혜안에 놀라 그를 별궁으로 인도하게 하였다.

이날밤 왜왕은 어려운 문제를 걸어 사명당을 곤경에 몰아놓으려고 시도하면서 360칸 병풍에 쓴 글을 다 보았겠는데 한번 외워주면 좋겠다고 하였다.

사명당은 《그만한것쯤 외우지 못하겠는가.》 하더니 1만 9천여귀에 달하는 시를 한자도 빼놓지 않고 줄줄 다 외우는것이였다. 다만 마지막 병풍 한칸의 글은 외우지 않았다. 왜왕이 그 사유를 물은즉 그는《접혀있던것까지야 어떻게 볼수 있었겠소.》라고 대답하였다. 왜왕이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과연 마지막 한칸은 펴지 않은채로있었다.

왜왕은 그의 비상한 재능에 그만 고개를 숙이지 않을수 없었다. 다음날 왜왕정에서는 조선사신을 철판으로 만든 배에 태워 큰 못에 띄워놓으면 필경 물에 빠져죽을것이라고들 의논하였다.

그래서 좋은 경치를 구경시켜주마하고 사명당을 철판배에 앉혀서 물우로 밀쳐보냈는데 철판배는 순풍에 돛을 달고 동서남북으로 평지를 다니듯 왔다갔다 하였다.

두번째로 실패한 왜왕은 이번에는 구리집을 짓고 사방에서 숯을 피워 태워죽일 계책을 꾸미였다. 사명당은 그런줄을 뻔히 알고있었으나 서슴없이 구리방안에 들어가더니 네 벽에다 《서리 상》자를 써붙이고 바닥에는 《얼음 빙》자를 써놓았다. 왜적들은 구리집두리에 백탄을 가득 쌓고 풀무질을 하면서 불을 세차게 일구었다. 밤새껏 구리집을 달군끝에 이제는 틀림없이 죽어서 재가루가 되였으려니 하고 문을 열어보니 사명당의 눈섭에는 성에가 하얗게 끼고 수염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왜왕은 마지막으로 조선사신을 철마에 태운 다음 고열로 무쇠말을 녹이려고 하였다.

사명당이 배운 도술로써는 이에 대한 방어대책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철마앞에 나가서서 자기 스승인 서산대사를 생각하며 서북쪽하늘을 향하여 두번 머리숙여 절을 하였다.

이윽하여 조선쪽에서 검은 구름이 밀려오더니 뢰성벽력이 치며 폭우가 쏟아지고 세찬 바람이 불었다. 사명당이 서있는곳에는 비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았으나 일본전국에는 큰물이 나서 집과 논이 다 떠내려가고 왜놈들이 무리로 죽었으며 국왕이 있는 성까지도 무너졌다. 암만 기다려도 비는 멎을줄 몰랐다. 왜왕은 너무도 황겁하여 항복서를 써보냈으나 사명당은 퇴를 놓으면서 《왜왕의 목을 베여와야 비를 그치게 하겠노라.》고 호통을 쳤다.

왜왕정의 모든 관리들이 와서 《제발 그것만은 면하게 해주십사.》고 엎드려 빌었으므로 《그렇다면 항복서를 바치고 조공으로 구리 3만 6 000근과 놋 3만 6 000근, 후추 300석, 황금 30근을 해마다 어김없이 바치라.》고 하였다.

왜왕이 하는수없이 그대로 항복서를 만들어 바쳤고 그제서야 뢰성벽력과 폭풍우가 멎었다.

사명당은 항복서를 받아냈을뿐아니라 임진조국전쟁시기 적들에게 붙잡혀갔던  3천여명의 사람들도 되찾아서 고국으로 데리고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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