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금강산 작성날자 : 2018-09-18    조회 : 89     추천 : 1
 
인민의 금강산

인민의 금강산!

너무도 쉽게 올리군 하던 이 말의 의미를 그처럼 크게 새겨안게 될줄은 나로서도 미처 몰랐다.

관광로정을 따라 금강산을 돌아볼수록 연방 터져나오는 감탄과 달리 발걸음은 점점 떠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이 절경을 잠시라도 더 보고싶고 계속 보고싶은 심정을 안고 나는 문득 금강산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가하는 생각을 해설원에게 비쳤다.

내 말에 동감을 표시하는 관광객들을 둘러보며 해설원은 지난날 이 일대 인민들이 금강산을 원망한적도 있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로부터 금강산은 천하절승으로 소문났는데 경치뿐아니라 산삼, 록용, 꿀, 범가죽, 돌버섯, 생복, 대구, 송어 등 희귀한 특산물이 나는곳으로도 유명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특산물이 인민들에게 돌려진것이 아니라 가혹한 공물조항이 되여 인민들의 기름을 짜내게 된것이다.

실례로 18세기에 금강산인민들에게 들씌워진 조세와 공물의 량은 다른 지방에 비해 볼때 8~12배나 되였다고 한다.

사실 다른 지방에서도 가혹한 조세와 공물착취로 인하여 굶어죽을 형편이였는데 거의 10배에 달하는 착취를 강요당해야 했던 금강산인민들의 처지에 대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설상가상으로 왕족, 량반족속들의 《장수》와 《안녕》, 《명복》을 빈다며 벌려놓는 불교의식, 행사들에 필요한 비용까지 걸머지여야 했고 왕실의 특별한 비호를 받고있었던 금강산사찰들에까지 수많은 조세를 바쳐야 했으며  금강산구경을 하는 량반부자놈들의 길안내, 가마메기, 짐운반, 식사보장 등 뒤치닥거리에도 밤낮없이 동원되여야만 하였다.

그리하여 이 일대 사람들은 《산이 어찌하여 다른데 있지 않고 우리 고장에 있어서 이 고생을 시키는가.》고 금강산을 원망하기까지 하였다.

죽지 못해 살아가던 금강산인민들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빼앗겼던 나라를 찾아주신 그때에야 비로서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감수할수 있게 되였던것이다.

금강산을 인민의 문화휴양지로 훌륭히 꾸리도록 해주신 절세위인들의 뜨거운 사랑속에서 오늘날 금강산인민들은 금강산의 진정한 주인이 되여 행복을 누리고있으며 금강산은 인민의 금강산으로 그 이름 더욱 빛내이고있는것이다.

금강산이 어찌 자연경치에서만 천하으뜸이랴.

절세위인을 모신 위대한 조국의 한 부분이기에, 인민을 위한 명산이기에 천하의 으뜸으로 그 이름 빛내이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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