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7-12-05    조회 : 150
 
백화암터와 서산대사비

내금강 만천구역 표훈동에 있는 백화암터는 삼불암의 북쪽에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구려시기 이곳에 《도산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후에 백화대사라는 스님이 암자를 세웠다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한때 서산대사가 백화암에 살면서 불도를 닦았다고 한다.

백화암은 여러차례 고쳐 세웠는데 주체3(1914)년에 불탄 이후 터만 남았다.

백화암에는 《수충영각》(봉건국왕에 대한 《충성》을 다한 스님들의 초상을 보관하는 각)이라는 건물을 지어놓고 무학대사, 서산대사, 사명대사, 라옹조사 등 이름난 스님들의 화상을 보존하여 왔다.

그러나 그것마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침략자들의 야만적폭격에 의하여 불타 없어졌다.

백화암터뒤에는 서산대사비를 비롯한 4개의 비석과 청허당(서산대사)부도 등 5개의 부도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 비석과 부도들은 17~18세기에 세워진것으로서 당시의 조각예술을 보여주는 문화유물들이다.

서산대사비는 임진조국전쟁때 8도승병 총대장으로서 수천명의 승병을 거느리고 의병들과 함께 왜적을 무찔러 싸운 서산대사의 공적을 기념하여 1632년에 세운것이다.

비몸돌에는 2 000여자의 글이 새겨져 있는데 글은 16~17세기의 진보적인 시인 리정구가 쓴것이다.

서산대사비는 땅을 상징하는 거부기모양으로 된 귀부우에 비몸돌이 놓여 있고 그우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룡트림모양의 갓돌(리수)이 놓여 있다. 갓돌우에는 련꽃잎모양으로 돌을 다듬어 올렸다.

서산대사의 략력과 공적을 새긴 비몸돌은 우리 나라 비석가운데서 가장 큰 축에 속한다.

특히 비몸돌 웃부분의 전면에는 구름무늬와 련꽃무늬속에서 두마리의 룡대가리가 큰 구슬(여의보주)한개를 가운데 끼고 힘차게 돋우새겨져 있고 좌우측면과 뒤면에는 꿈틀거리는 룡이 생동하게 새겨져 있어 금강산의 비돌가운데서 조형적으로 가장 우수한것의 하나로 되고있다.

서산대사비를 백화암뒤에 세우게 된것은 서산대사가 한때 이곳에 와서 불교공부를 하던 곳이였다는데도 있겠지만 임진조국전쟁때 그의 애국적소행을 길이 전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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