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날자 : 2018-08-23    조회 : 230
 
금강산과 력사인물들(5)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시인 정철(1536년-1593년)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면 그가 창작한 《관동별곡》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정철은 16세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국문시가작가의 한사람으로서 자는 계함이며 호는 송강이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이름있는 학자들에게서 글을 배웠으며 남다른 열성과 뛰여난 재능으로 하여 20살전후에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다.

그는 일찍부터 벼슬길에 나서 직제학, 대사성, 관찰사 등 여러 관직을 거쳐 좌의정의 높은 벼슬까지 하였으며 이 과정에 당파싸움으로 말미암아 여러차례 정계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류배살이도 하였다.

그는 복잡하고 곡절많은 생활과정에 당대 사회의 착잡한 현실과 인민들의 생활형편을 어느정도 리해하게 되였는데 이것은 그의 시가창작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였다.

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훈민정음》의 창제와 함께 우수한 조선문자에 기초하여 문학을 발전시킬수 있는 넓은 길이 열려있었다. 하지만 고루한 량반관료들과 문인들은 이른바 정통문학을 내세우면서 우리 말과 글로 된 시와 산문들을 《속된글》, 《비루한 문장》이라고 하면서 천시하였다.

그러나 정철은 이것을 대담하게 타파하고 우리의 국문으로 가사문학을 창작하였다. 때문에 정철의 공로는 바로 종전의 우수한 시가전통을 이어받아 우리의 국문시가를 한계단 높은 경지에로 올려세움으로써 우리 나라 시가문학발전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데 있다.

그의 국문시가작품에서 첫 손가락에 꼽는 대표작이 바로 《관동별곡》이다.

《관동별곡》은 시인의 유람로정을 따라 만폭동으로부터 비로봉을 거쳐 해금강의 총석정, 동해바다의 해돋이에 이르기까지 금강산과 그 일대의 경치를 순차적으로 펼쳐보이면서 천하명승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자랑높이 구가하였다. 작품은 생동한 시적형상과 세련된 언어의 솜씨있는 구사로 마치 금강산의 천하절경을 방금 눈앞에 보는듯이 그리고있다.

금강산의 절승경개를 생동한 필치로 펼쳐보이면서 아름다운 조국산천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감정과 세계적인 명산에 사는 민족적긍지를 담아 금강산의 4대명폭의 하나인 십이폭포를 노래한 구절에서 이렇게 표현하였다.

불정대 올라 서니

천길절벽을 반공에 세워두고

은하수 한굽이를 촌촌이 베여내여

실같이 풀어내여 베같이 걸었으니

도경 열두굽이 내 보매는 여럿이라

리적선 이제 있어 고쳐 의논하게 되면

려산이 여기보다 낫단 말 못하려니

우리 말의 우수성을 잘 살리고 비교, 비유 등의 재치있는 시적형상으로 금강산을 살아움직이는것과 같이 그려낸 《관동별곡》은 우리 나라 국문시가발전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걸작이였다.

이 작품은 세상에 나오자 우리 나라의 자연을 다른 나라의것보다 못한것으로 여기면서 그 나라의것만 찬미하기가 일쑤였던 량반사대부들의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당대는 물론 후세의 뜻있는 문인들은 정철의 《관동별곡》에 찬탄을 금치 못하면서 그의 국문시가작품들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관동별곡》외에 《사미인곡》,《속미인곡》,《성산별곡》 등의 가사작품, 가혹한 봉건적압박과 착취밑에서 신음하던 농민들의 처지를 동정하는 내용의 시와 인도주의적이며 교양적의의가 있는 시조도 썼다.

이처럼 정철은 금강산을 비롯한 조국의 자연을 훌륭하게 그려낸 국문시가작품들을 수많이 창작한 우리 나라 중세기 문학사에서 가장 우수한 시인의 한사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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